게임 중독인 아들을 살리고 싶은 아버지
월 1회 집에 들어와 아들을 보면 화가 나고 답답한 아버지.
나보고 게임을 하는게 맞냐 안 하는게 맞냐 질문을 던진다.
먼저는, 그가 화를 내고 답답해 하는 감정이 자신의 것임을 알아야 한다.
둘째는, 그 감정이 눈 앞의 자신의 감정임도 알아야 한다.
셋째는, 먼저와 둘째 모두 몰라도 되는 자유가 있다는 것을 안다.
그것이 자신의 감정임을 돌려줬을 때, 나는 그런 감정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고 완강히 거부한다.
'일터에 나갔을 때나 사람 만났을 때, 그런 감정과는 동떨어진 나'를 강조한다.
더 이야기를 한다. 더 이야기를 한다.
그의 말을 듣는 이유는, 그가 이미 알고 동의한 사실로 그의 가리워진 눈을 돌리기 위함이다.
또, 그가 누구인지 내가 알고 싶기 때문이다.
지금 눈 앞에 있는 존재가 누구인지 나는 알고 싶어서 그가 쏟아내는 에너지와 보조를 맞춰서 내 생명을 쏟아낸다.
빙글빙글, 그의 감정이 쏟아질 여유를 주고, 그가 자신을 드러내게 한다.
쏟아내고 싶었지만 길이 없다 좌절한 사람에게 상대가 되어준다.
나도 정확히 그와 같은 자가 된다. 그도 나도, 나고 그다. 마음에는 너와 내가 없다.
나도 그와 같이 분노하고 나도 그와 같이 안타까워 한다.
우쭈주라거나 무조건적인 YES 가 아니다. 그의 말을 계속 새로운 버전으로 바꿔서 돌려준다.
그의 감정이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도록 그에게서 나온 언어를 비틀어서 돌려준다.
내담자가 갔던 길을, 상담자도 같이 간다.
같이 가다보면 상담자는 길을 발견하고 내담자가 막혔다고 하는 길 끝에 다다르고, 다른 길을 발견하게 된다.
답답한자는 통하지 못한 자, 통하고 싶은 자.
상대는 A , 나는 B 일 때, 다르다는 사실이 내 밥을 빼앗아 가거나 피를 흘리게 하지 않아도 화를 내는 건 인간의 뇌는 '모른다'는 것을 생명(종)의 위협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너는 날 모른다. 나는 널 모른다. 알고 이해하면. "아 B 일 수도 있구나 하면 그냥 넘어가게 된다" 내 생명에 위협을 주지 않는구나 하면 그제서야 답답함과 분노가 사라진다.
이것은 인지적인 이야기. 느낌으로 접근하기 전에 그가 말을 받아들일 수 있게 부드럽게 두드리는 마사지다.
"10~20억 버는 가게 사장님도 게임을 한다" 이 말은 게임이 나쁘다는 전제 때문에 다른 방향으로 사고하지 못하고 묶인 그의 사고를 여유있게 하는 말.
"아버지는 아들을 이해할 수 있는 통이 있지만, 아들은 통이 없다." 이 말은 자신이 아버지의 역할을 맡았음을, 자신이 잊고 있었지만 늘 가슴에 가져왔던 넓은 품을 떠올리게 한다.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깨우는 말.
"아버지 말씀하신 것처럼, 일이 안 풀릴 때 게임을 하는 거라면, 아들은 매일이 안 풀리는 것이다. 세상이 무섭거나 안 좋은 피드백만 주어서다. 그런데 그 아이는 아버지 말대로, 학교 끝나면 집에서 컴퓨터만 했다고 하지 않았느냐. 세상을 살아보지도 않은 놈이 어디서 그런 것을 알았겠느냐. 바로 세상을 바라보는 부모의 눈빛 부모의 태도, 부모의 삶이다."
이건 개소리일 수 있다. 학교에서 세상을 배울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의 마음에 들어갈 수 있는 말이다.
계속 처음부터 지금까지 자식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계속 대화 상대인 아버지 자신을 돌아보고 이해하도록 말을 넣고 있다.
자식 때문에 왔지만, 결국 자기를 아는 것으로 간다.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아냐고 나한테 물으러 온 사람에게는, 질문을 되돌려 줘야 하기 때문이다.
추가적으로 나의 삶을 예시로 들어서, 마음을 더 부드럽게 만든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으로 사람들에게 진심을 전하기는 어렵지만, 내 삶이 그런 삶이었으므로 고백한다.
정말로 멀리 멀리 돌아왔다. 분위기가 부드러워 진다. 분노로 인해 가리워진 눈이 조금씩 맑아진다.
"나는 그런 적이 없는 거 같은데...", "그건 000의 생각이고요. 눈 앞의 아들이 정말 그런지 모르시잖아요?"
됐다. 이제서야 자기가 다 안다고, 자식이 게임만하다가 40대 때 나 원망하면 어쩌냐고 하며 미래 예언가 혹은 데미갓 흉내를 내던 자신이 깨졌다.
"모르면 물어봐야죠.", "내가 안 해봤겠냐. 무슨 말을 하면 싫어 한마디 딱 해버리고. 나랑 겸상조차 안 하려한다."
그리고 다시 슥 회피해버린다.
"몰라, 내가 너무 예민한가보다. 알아서 풀릴 걸. 얼굴 안 보고 1년 있으면 나아지겠지"
걸렸다. 걸렸어.
"원래 너와 나 관계인데, 부모자식처럼 가까우면 나와 나 관계가 되어요. 그리고 0000는 지금 아들인 000 를 모르는 채 하려는 게 아니고
000 씨 본인을 내버려두는 거에요"
"그게 무슨 말이냐"
"아버님 성함이 뭐죠?" "K"
" '답답한 마음을 가진 K, 너 한 1년 두면 답답함이 풀리겠지? 그 때까지 어디 내 눈에 안보이게 꺼져'라며 스스로를 대하는 거에요.
답답한 자신의 마음을 책임지고 푸는 대신, 그저 자신을 방치시키는 거라구요. 아들인 00 가 아니라 자신인 000 를 방치하는 거에요."
참 오래 걸렸다. 자신의 감정은 자기가 살아내야 한다는 것을, 그도 동의하는데 아주 오래 걸렸다.
"그럼 어떻게 해야하나?"
"K 가 말한 것 처럼 20살 넘은 아들 방치하면 지가 살겠지란 말과 다르게, 아들을 보면 답답하고 화가나는 것은,
'내가 죽어도 저 아들이 살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일 거에요. '나 가도 자기 앞 가림은 다 하겠구나 ' 이게 아니라구요."
"그래 맞아 내가 그 마음이야"
"그럼 지금 눈 앞에 자식이 그런 상태인지 모르는 게 맞죠? 그렇게 답답하고 화를 낼 정도로 알고 싶으면 알려고 해야죠."
"아니, 내가 말해도 소용이 없으니까. "
"지금, 내가 말하면 딱 통해야 한다고 전제를 하고 말하시잖아요. 한 두번 해서 안 되면 그만 두어 버리시구요."
"아내가 아이랑 친하니까. 당신이 좀 애랑 잘 해야..."
"부인에게 그 역할을 맡기시만, K 님 소망은 점점 더 이뤄질 수 없어요. 아버지와 아들 역할은 맡지만, 친밀한 관계는 없잖아요.
가족들 다 살리기 위해서 부인과 남편의 역할을 나눴기에 부인이 아이들과 더 친하고 관계를 쌓은 것 뿐이에요.
아버지 역할만 맡고 있고, 친하지도 않은 사람이 니 인생 잘못 살았다고 하면 기분이 어떨 거 같아요? 화를 내던가. 날 이해를 못한다고 입을 다물어 버리겠죠.
아. 지금 보니까 관계를 어떻게 쌓아야 할 지 모르시는 거네요.
사랑한다고 고백을 하셔야 해요. 지금 관계로는 접근하면 당연히 밀쳐내겠지요. "
사실상 솔루션 같은 건 없다.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자기 소망과 자기 필요를 알게 하는 것만 유효한 접근일 것 같다.
"그정도로 사랑을 하면 계속 고백을 하셔야 해요.
'나는 너를 뜨겁게 사랑한다. 나는 너를 목숨보다 사랑한다. 나는 너를 뜨겁게 사랑한다.... 아이 지겨워 그만해요.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그렇게 될 때까지요.
내가 생명을 다해 살리고 싶을 정도로 소중한 존재임을 알리고 싶으면 그 마음을 사셔야죠."
글을 보면, 순간 방향이 바뀌어 버린 것을 알 수 있다. 사랑이란 말, 그 뜨거움을 고백하는 마음. 그것을 내가 표현했고, 그의 마음에 그것이 들어가 그도 느껴버린 거 같다.
그는 말이 없다. 화를 내지도 않고 지루하거나 무시하는 표정을 보이지도 않는다. 나는 말을 이어갔다.
이제 그는 어떻게 해야하냐 따위를 묻지도 않는다. 자신의 마음을 알면, 그가 가야 할 방향도 알게된다. 내가 마음 보는 눈이 있고 날 찾아오는 사람은 마음의 눈이 없어 못보고.. 그 따위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도 나와 같은 사람이다. 내가 보는 것을 그도 볼 수 있다. 다만 그는 지금 화가 나서 어리석어진 상태일 뿐이다.
애니웨이, 상당히 만족한(상기된) 얼굴로 그는 부인과 함께 길을 나섰다.
자기 마음 후련하게 털어놓기 했고, 자기가 잊고 있었던 그 뜨거운 느낌을 통해 '나'를 만났으니 그럴 것도 같다.
실상 내가 한 것은 크게 없다. 그가 내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고, 내 마음을 받아들이도록 동의해주지 않았으면 나는 아무 힘을 쓸 수 없다.
중간에 중요한 장면이 하나 있었다. 본인이 말하면 되는데 자기가 대신 그사람 마음을 표현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그에게 확 소리를 질러 버렸다.
"K 씨 마음을 K 씨가 표현하게 해야지. 000씨가 그것을 가로채서 대신 표현하는 건 그 사람에너지를 빼앗아 자기걸로 먹어버리는 거에요!. 그러지 마세요!"
왜 그런 말이 나왔을까? K 는 입을 쉽게 다물고, K 의 아들도 입을 쉽게 다물면, 관계의 힘은 K 의 부인에게 간다.
K 의 부인은 억울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 번도 나쁜사람 역할을 한 적이 없다고 생각했을 테니.
하지만, 그게 좋을 때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좋지 않다. "내가 원래부터 그런 존재"가 아니라, 필요에 의해 맡게된 역할이었고, 지금은 그 역할을 포기하고 아들과 아버지가 서로 자신의 마음을 전하도록 내버려둘 필요가 있다는 걸 알아야 할 거 같다.
나도 왜 그 때 그렇게 소리를 질렀는지 알 수가 없었는데 이야기가 끝난 뒤, K 앞에 나타난 나를 돌이켜 보면서 K 가 사람들과 관계 맺는 방식에 대해서 알게됐고, 아들이 20대가 넘었는데 부인에게 손을 만지고 살을 부비며 사랑한다고 하며, 자꾸 아들 대리인으로 남편과 싸우는 부인이 출현했는지...
아 이건 쓰기 귀찮다. 힘들어. 상담판 나오기를 잘했구나 싶다. 한 사람의 마음 쏟음을 다 받으면 그 때마다 너무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보기 좋게 정리하... 면 내가 힘들어 그냥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