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핑 노동자 야도
부자놈에 대한 증오와 내 소망 본문
친구가 갑자기 3억여원이 생겨 집을 사고 싶다 한다.
부러웠다. 부럽다고 나를 고백했다.
그 친구는 자기 친척이 더 부럽다고 했다.
전국단위 사업체 회장의 손자로 태어나서, 유치원 때 증여받은 건물만 지금 20억원이고 공부도 못해서 미국에 자기 친척 회사로 입사 후 돈으로 사업체 두개 차려 실컷 생활하다 지쳤다고 한국으로 돌아오겠다며 부모가 투자한 원금을 제외하고 16억원의 이익을 들고 오겠다고 하는 그가 부럽다고한다.
어제 오늘, 만나는 사람마다 위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를 할 수록 윗 배가 살살 쑤신다. 그 돈이 내가 되었으면, 저 상황에서 주인공만 나로 바뀌었으면 싶다.
지금 내가 처한 '스토리'에서 탈출해서 타인의 '스토리'를 살고 싶다는 소망. 그런 소망이 필요한 연유가 무엇일까? 연유를 스스로에게 물어볼 여유가 없다. 좌절감 속에 푹 잠긴 나를 만나 나의 필요를 묻는 건 싫으니까. 그저 그런 나를 만날기 싫어서 곧바로 증오나 허망함으로 넘어가 버린다.
정말로 좌절한 것인가, 좌절감 자체를 느끼기 싫어서 스윽 빠져서 그런 척을 하고 있나?
이야기 주인공이 됨으로써 내가 얻는 것은 많은 돈. 고통을 느끼지 않는 상황이다. 내 감정은 그것이 좌절됐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정말 내 것이 아니다. 나는 타인을 내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도구로 사용한다. 그리고 타인의 이야기자체가 아닌, 그 속에서 발견한 나 자신의 모습을 본다. 타자의 이야기만 떠벌리는 건 아직 거기서 나의 무엇을 발견한 지 모른다는 말이다.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예를 들면, 단지 지금 밥 한끼를 먹고 싶은 배고픈 사람이 있다. 마침 TV 에 나오는 먹방에서 무제한 뷔페 음식으로 배 터질 때까지 먹는 사람들을 본 뒤, 그들이 부럽다며 만나는 사람마다 그사람들 이야기를 하고 다니는 것과 같다.
나는 단지 밥 한 끼가 필요한데 없다는 좌절감이 있고, 못먹은 좌절감이 자신의 필요를 채울 수 있는 방편을 무제한 부페를 먹는 사람에게서 본 것이다. 이 때부터는 무제한 부페를 못먹어서 좌절한 것이 되어버린다. 어떤 느낌 때문에 우리의 눈이 가리워졌기에 때문에 정확히 한 끼 만큼이 식사의 필요가 무제한의 욕망이 되어버렸다.
애니웨이, 나는 지금 대출 빚에서 벗어나면 좋겠다. 그 스토리의 주인공이 되어서 타인의 삶을 살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내게 필요한 것은 지금 월마다 독촉받는 느낌의 해소일 뿐이다. 느낌의 필요를 산다.
느낌을 한모금씩 산다. 느낌의 필요를 산다. 친구라는 '대상'을 통해 내가 만난 '내' 느낌과 그 필요를 채울 방법을 나는 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대출 상환액을 높이는 것. 그리고 추가 소득을 더 발생시키는 것. 마음을 다하고 후회가 들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게 내가 할 바다. 대출 빚이 있다는 사실이 날 죽이지는 못한다. 내가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내 필요를, 내 마음을 다해 정성을 기울여 살지 않는 답답함과 막막함이 나를 울적하게 덥쳐 죽이려 할 뿐이다.
나 배고픈데 TV 에서 배터지게 먹는 사람들이 있다고 배고픈 고통을 그들이 발생시킨 것처럼 그들을 가해자로 만들고 증오한다면, 내 필요는 그들을 욕하고 증오하는 와중에 소외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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