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핑 노동자 야도
김장철과 명절의 추억 본문
어머니는 어릴 때 내게 설거지를 시키셨다. 설거지 뿐 아니라 어머니 사업장 일도 도우도록 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약간 벗어났고, 백수였을 때는 내가 매일 하고, 돈을 벌기 시작한 뒤로는 어머니가 혹은 아버지가 하신다.
김장철에는 배추를 자르고, 소금에 절인 배추통을 몇 번이나 뒤집기도 했다. 새벽에 추운데 운동화가 물에 젖어가며 고무장갑을 끼고 배추를 뒤집고 하면 허리도 아프고 늘 지쳤다. 수업이 없는 날에는 동네 아주머니들과 함께 김치 속을 버무리기도 했다. 눈에 띄지 않게 깍두기 정도는 했다.
명절에는 어김없이 전을 부쳤다. 요리는 어른의 영역이라서 배추랑 무채를 썰고 송편과 동그랑땡을 빚었다. 재미로 시작하다 늘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던 게 추억이다.
작은 아버지네 아이들과 명절때 만나서 전을 집어 먹는 게 아주 기분 좋은 추억이다.
아쉬운 건 어머니 사업에 필요했기에 누나의 한식 조리사 자격증 취득을 지원해 주셨고 명절 음식 만드는 방법을 누나는 전수받은 것.
허드렛일은 다 시키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에서는 남자라서 배제된 게 가장 아쉬운 일이다.
어릴때 늘 집에서 설거지를 했기에, 어릴 때 다니던 교회 점심 시간에 아주머니 집사님들과 함께 늘 설거지 봉사를 한적이 있다. 그런데 나도 열심히 하고 할 수 있었는데 그분들 마음이 불편했는지 그만 두게 하셨다.
어머니는 아이들이 호기심 많다는 점과 칭찬을 좋아한다는 것을 아셨다. 그래서 일을 시키고 칭찬으로 아이들이 기분좋게 일을 하게 했다.
20대 때 나도 한식 조리사 따게 지원을 해주셨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나도 내가 원하는 음식을 조리해 먹고 싶다. 그 때부터 엄마 옆에서 명절을 보내고 김장철을 보냈다면, 엄마의 맛 그리고 나의 맛을 찾아낼 수 있지 않았을까?
지금 왜 못하냐. 그냥 지금 의욕과 체력이 부족하다. 집에 오면 쉬고 싶다. 그리고 점심 저녁을 외식으로 때울 때가 많다.
한식 조리사는 마음 한구석에 ... 멋들어진 포장지를 뒤집어 씌우면, '버.킷.리.스.트'에 적혀있는 것들 중 하나다.
명절날 전을 부치고, 김장철에 배추를 뒤집으며 언젠가는 나도 내 가족과 이런 시간을 보낼 거라 기대했었다.
지금은 아이를 낳지 않고 결혼도 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주의이기 때문에 그저 어떤 아련함을 만날 수 있는 마중물 정도의 추억이지만.
가족이 생기면, 내 가족이 생기면. 끈끈하게 이어진 친밀한 관계. 그것의 특별함을 가족이란 단어를 통해서 추억하고 그 당시 어린 시절 느낌을 추억한다. 두 번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림과 순간.
벌써 두시네.
트위터만 하다보니 맞춤법이나 글을 고치는 짓을 안하게 되어버렸다. 허 참. 트윗 하나 올리기 전 매 번 맞춤법 검사기를 돌리던 시절의 나는 어디 갔나?
맞춤법과 글 형식에 관해서, 남이 하는 로맨스를 나도 한다. 나도 불륜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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