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핑 노동자 야도
나의 얼굴 본문
어릴 때, 드래곤볼을 좋아했다. 육체적인 표현이 격렬하게 일어나는 만화라서 나 대신 에너지를 표출해주니 좋았다. 드래곤볼 뿐 아니라 다른 만화도 좋아했다. 지금도 가끔 30~40권씩 만화를 빌려 만화만 보거나 웹툰 수십편을 꾸준히 본다. 다음, 네이버, 투믹스, 카카오, 레진. 아 레진은 좋아하는 작품이 종료된 후 안 들어간다.
여튼 거울은 안 보면서 만화 캐릭터들만 보고 살았더니, 내게 좋은 느낌을 주는 얼굴은 일본 만화 주인공 캐릭터가 되어 있었다. 거울을 보고 내가 일본 만화 캐릭터와 다르게 생겼다는 것을 발견하면 창피했다. 책 읽고 잠이나 자던 아이였는데, 무섭게 생겼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피드백도 나를 움츠러 들게 했다.
20대를 거쳐 30대 초부터 내 얼굴이랑 화해하려 노력했다. 거울도 안 보고 눈꼽도 안 때고 뭐 먹으면 입가에 묻히고 다니는 나라서, 내가 내 얼굴에 익숙치 않구나 싶어서 조금씩 거울을 보고 내 얼굴을 떠올렸었다.
어쩌면 안면 인식하는데 뇌가 능력이 떨어지는 지도 모른다. 사람의 얼굴을 기억하는데 남들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고, 노래 멜로디는 기억해도 제목은 모두 잊어버린다.
애니웨이, 내 생각과 친구의 피드백을 통해 나와 가장 닮은 연예인을 추렸더니 이원종씨가 나왔다.
여전히 난 이원종씨가 잘생겼다고 말할 수 없고, 나 자신에게도 그렇다.
하지만, 이원종씨를 보며 저사람 나랑 닮았다고 사람들에게 소개할 정도로,
내 얼굴을 미워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30살은 미지의 세상이었다.
이젠 많은 것들이 밝혀지고 10~20대의 내가 그리던 나는 여기 없네.
그래도 내 얼굴에 이제라도 익숙해 지고 편안해 진다는 게 좋다.
어머니는 주기적으로 "000 하면 넌 장가 못가. 누가 어떤 여자가 너한테 시집을 오겠니"라며 누구보다 선도적으로 미러링을 시전하셨고
그것이 내 자기 이미지를 소수자나 경계선에 ... 아 이게 성 정체성 이야기가 아니다.
주류에 속한 그 무엇이 아닌, 하찮은 무엇, 나 또한 다르지 않은 무엇으로 있도록 했다.
밤이 깊었고 배가 부르다. 술은 마시지 않지만, 술 없어도 이렇게 취하고 방탕하게 산다.
나랑 닮은 이원종씨가 연예인이고 여러 굵직한 작품에 나와서 기분이 좋다.
분명 잘생긴 것이 아님에도 TV에서 존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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